神의 마지막 작품 무등산(無等山)/광주-44

백절 황인두

 

호남은 곧 무등산 무등은 석경(石景)이라

세월이 견디어낸 천하의 비경이고

가슴에 담지 않고는 극락세계 마다하네

 

순백의 서석대(瑞石臺)는 신비한 수정병풍

상고대 입석대(立石臺)는 절묘한 주상절리

매서운 무등의 기상 석주(石柱)마다 쌓이네

 

불가사의 삼대석경 아찔한 광석대(廣石臺)라

제봉의 유서석록(遊瑞石錄) 진수에 빠져드니

규봉암(圭峯庵) 풍경소리가 분별없이 들리네

 

바람이 휘몰아치니 산 꾼들 아랍상인

장불재 눈꽃 터널 어디로 이어지나

노승이 중머리재에서 일심사상(一心思想) 쌓고 있네

 

백설기 먹고 있는 왕성한 소나무가

옥새를 잃어버린 허탈한 왕자에게

새인봉(璽印峰) 가리키면서 찾아가라 소리쳐

 

흐드러진 나뭇가지 길손을 유혹하고

도도한 눈바람에 앞길이 흔들리나

입석대 가는 길목에 백마능선이 업어줘

 

인왕이 무등에는 없는 듯 자리 잡고

지왕도 기색 없이 평생을 살아가니

천왕봉 내가 맏아들 소리 없는 메아리

 

정철이 퇴청하는 석양을 잡아오니

서석대 한순간에 수정병풍 변신하고

상고대 파격세일로 인파들은 초만원

 

"무등산 한활기뫼히 동다히로 버더이셔"

송순이 면앙정(俛仰亭)에 걸터앉아 읊어대니

송강은 관동별곡(關東別曲)으로 밤을 새워 화답해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듯이

무등이 없었다면 광주정신 있겠는가

증심사(證心寺) 불경 소리가 무등산을 오르네

 

-. 산의 신비 속에는 아픔의 시간을 품고 있다.

 

【무등산 해설】

 

무등산은 무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등(無等)은 등급이 없다는 의미이니 차별이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산!

무등산이 대변하고 있어서 그런지 무등산을 품고 있는 광주는 우리 근ㆍ현대사의 격동기의 궤적을 함께 해왔다.

 

무등산은 계방산, 덕유산, 소백산 등처럼 겨울 산의 대표하는 산이다.

상고대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석경의 비경은 영원히 잊지 못할 장관이다.

 

1수ㅡ 무등산의 기상이 호남의 저항정신을 잉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까이는 5ㆍ18민주화운동, 광주학생의거, 임진왜란 때는 무등산이 의병의 본거지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무등산의 명물은 석경이 아닐 수 없다.

겨울 산의 백미인 상고대의 맛을 무등산의 석경에서 보고 나면 다른 겨울 산 찾지 않을 것이다.

 

2수ㅡ 칼바람을 민낯으로 뚫고 나니 눈보라로 치장한 입석대가 서성이고 있다.

강남스타일처럼 쭉쭉빵빵의 바위기둥들이 산 꾼들의 탄성과 시선을 독차지한다.

무등산의 3대석경(입석대ㆍ서석대ㆍ규봉)은 일명 주상절리(柱狀節理)로써 땅속에서 살기 싫어서 하늘로 솟아오른 기둥으로 수천 년 모진 비바람으로 빚은 작품들이다.

 

입석대에서 넋이 나간 산 꾼들을 일으킨 것은 어디서나 들려오는 환호성이었다.

서석대의 물광 민낯에 매료되어 갈 길 바쁜 석양마저 서석대를 안고서 떠날 줄 모른다.

송강(松江)도 성산별곡에서 수정이 병풍을 치고 있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서운 칼바람처럼 무등산의 바위기둥은 매서운 기상이 감싸고 있었다.

 

3수ㅡ 무등산의 3대 석경의 하나인 광석대는 규봉암을 안고서 있다.

황산의 비래석처럼 크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아찔하기도 하지만 곧 굴러 떨어져서 규봉암자를 덮어버릴 것 같다.

무등산을 말할 때 여러 선인을 언급해야 하지만 제봉(霽峰) 고경명의 무등산 기행문인 "유서석록(遊瑞石錄)"을 빼놓고는 무등산엔 주상절리의 절경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무등이 차별을 두지 않듯이 규봉암의 풍경소리도 분별없이 세상에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4수ㅡ 겨울 산행의 이야깃거리의 중심은 칼바람일 것이다.

무등산은 겨울 산의 대명사인 만큼 매서운 칼바람으로 산 꾼들은 아랍 상인처럼 눈만 빼고

완전무장상태이다. 장불재의 눈꽃터널을 환호성과 함께 빠져나오면 중머리처럼 번지르르한 중머리재에 오르니 원효대사의 일심사상(一心思想)을 떠올린 시인의 상상력이 뛰어난 것인지 비현실적 것인지..?

 

5수ㅡ 어느 산이나 벼랑 끝에 매달린 소나무의 생명력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중머리재에서 새인봉으로 가는 길은 아찔한 절벽에 늙은 소나무들이 기기묘묘를 부리면서 백설기처럼 흰 눈을 먹고 있다.

때마침 옥새를 잃어버리고 헤매는 왕자에게 새인봉에 가보라 일러준다.

옥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새인봉(璽印峰)이라 한다.

 

6수ㅡ 하늘과 눈꽃들이 남발하는 겨울 산행은 산호초와 녹용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나뭇가지의 눈꽃들이 산 꾼들을 유혹하고 잔설들이 휘날려 앞길이 막막하나 입석대로 가는 길목에선 백마능선이 길을 비켜주니 발걸음이 가볍다.

 

7수ㅡ 한국명산 정상에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 군사시설 등이 있다.

화악산의 정상봉우리가 신선봉인데 군사시설 때문에 중봉 대신 정상역할을 하고 있다.

무등산도 천왕봉이 가장 높지만 비탐구역이다.

서석대의 표지석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으며, 인왕봉과 지왕봉도 갈 수 없다.

민족분단의 슬픔을 지척에서 실감하니 가슴이 아프다.

 

8수ㅡ 송강 정철은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송강이 성산별곡에서 서석대를 음률에 태우고 나니 서석대는 세상이 좁을 만큼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정철은 서석대가 붉은 노을 안고 있을 때 유리벽처럼 반짝반짝한다고 하여 수정병풍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서석대의 상고대는 천하일품이고 겨울에는 파격세일까지 하니 산 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셔터 소리와 빛으로 정신이 없다.

 

9수ㅡ 무등산에는 많은 선인들의 일화가 많다.

특히 문인들이 남긴 작품의 흔적은 무등의 진가를 드높이고 있다.

그중 면앙 송순은 면앙정에 걸터앉아 면앙정가에서 "무등산 한 줄기 산이 동쪽으로 뻗어 있어"읊어 대니 송강 정철은 때마침 무등에 올라 관동별곡으로 읊조리면서 화답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10수ㅡ 국난 중 국난인 임진왜란으로 급박한 때에 무등산을 기점으로 의병활동이 활발했으며,

특히 성웅 이순신은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듯이 무등이 없었다면 광주의 저항정신과 시대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증심사의 불경소리가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면서 무등산을 오른다.

▲ 백절 황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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