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이 논설고문

공직자라면 맡겨진 직책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 사명감을 소홀히 하고 오히려 국가에 해악을 끼친다면 국민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입법·사법·행정의 3권이 분립하여 상호 견제하면서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잘 지켜가야 한다. 공직에 있는 모든 공직자는 공복(公僕)으로서 국가의 번영과 국민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와 정신으로 충성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이들이 개인의 사리사욕과 부귀영화를 추구해 명예욕만을 탐하고 맡은 중책을 소홀히 한다면 국가의 장래는 희망이 없을뿐더러 국민은 예리한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위공직자 멸사봉공해야

문재인 정권은 고위공직자를 임명하는데, 야당의 동의도 없이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는, 이른바 ‘야당패싱’ 장관이 최근에 황희 문체부 장관까지 29번째나 된다. 여당이 다수의석의 힘으로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능을 무력화시켜 무조건 허점투성이 장관을 임명해 버린다. 그러니 그들이 소신껏 업무를 추진하기란 어렵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너 죽을래’라며 월성 원자로 가동을 2년 연장하는 보고서를 올린 담당과장을 질책했다는 일화가 국민에게 회자 되고 있다. 또한, 업무에 무능하고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왜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는 고위공직자나 장관도 득시글거린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대전(大戰)’에서 엄청난 자상을 입으며 살아남았고, 대선 후보 여론조사 1위에 오르기도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그가 맡은바 검찰총장이라는 직책의 사명을 알고 충직하게 소신껏 일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맡은 바 감사역할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그의 공직은 빛나는 것이다. 감사가 국민이 맡겨진 사명도 모르고 권력자만 쳐다본다면 나라의 부정부패와 원칙에 어긋나는 재정지출을 도대체 누가 감시하고 국민에게 부정을 알리겠는가.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민주주의와 법치의 보루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장과 대통령보다도 국민의 신망과 존경을 받아야 할 대법원장이 뻔뻔한 거짓말을 두 번이나 되풀이함으로 그 이름을 비아냥대는 ‘거짓의 名手’가 되었다는 말이 떠도는 것 아니겠는가. 정권의 법관 길들이기 차원에서 탄핵이란 올무에 걸린 임성근 판사에게 대법원장은 어떻게 했는가.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소추가 된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가 탄핵을 당하기 전 대법원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찾아가 “몸이 아파 법관 일을 하기 어렵다”라고 사표를 썼는데 당시 그는 건강 이상으로 수술을 받은 직후였다고 하다. 그때 대법원장은 “지금 국회에서 판사탄핵 논의 진행 중인데 사표를 받으면 탄핵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다고 하니 사법부의 수장이 국회의 하수 같은 말에 기가 찰 노릇이다.

대법원장 거짓말 드러나

하지만 녹취 사실을 알 수 없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라는 공식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임 부장판사 측이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사표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는 김 대법원장 육성이 담긴 음성 파일 등을 공개하면서다. 그야말로 정권에 입맛을 맞추려는 태도가 지나치다.

임 부장판사에 대한 헌정사 초유의 법관 탄핵소추 의결에 이어 사법부 수장의 거짓 해명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법원 내부는 침통한 분위기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사법부가 완전히 문을 닫을 상황이 됐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재판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는 임 판사를 탄핵했고 이제 법원에 내릴 판단에 임성근 판사의 운명이 달렸다. 임성근 판사는 퇴임이 내일모레라는데 왜 탄핵을 막무가내 밀어붙였나? 탄핵을 주도한 이낙연 민주당이 답을 할 차례이다. 판사 군기 잡기인가 사법 농단 징치인가.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