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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술·사랑의 醫道 실천…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사승인 2021.04.08  09:4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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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종택의 직문즉답] 서울 은평치과의원 이영만 원장의 삶과 인술 실천, 미래 비전

詩 쓰고 노래하며 사회봉사하는 ‘낭만 치과의사’

나눔과 봉사의 활동상 뒷받침하는 ‘증거’들 빼곡

학구적 열정 ‘날개형 임플란트’ 발명 특허만 5개

시집 4권…가수 남진의 '모정'  등 30여 곡 작사

반값월세 첫 착한건물주 "모두 어렵잖아요" 울림

의사와 약사 등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이들은 인간애를 지녀야 한다. 생활인이기에 영리를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생명외경의 보호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의학의 아버지’고 숭앙받는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제시한 선서는 오늘날에도 의료의 윤리적 지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등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도 한의·양의를 떠나 인술을 펼친 의원들이 적잖다. ‘의성(醫聖) 허준’을 꼽을 수 있다. ‘인술제민(仁術濟民)’은 허준의 정신을 상징한다. 인술을 베풀라는 스승 유의태의 가르침을 따르며 불후의 명저 ‘동의보감’ 25권을 완성해낸다. ‘인간이 되지 못한 자에게 의술을 전할 수 없다(非人不傳)’는 그 스승의 유지가 전승되고 있다. 고금동서 공히 의학을 공부하되 생명윤리를 함께 익힐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의술을 인술(仁術)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서울 은평치과의원 원장 이영만(李永萬·63) 박사-. 그를 일컬어 의료계 안팎에서 학문으로서의 의학, 행위로서의 의술, 사랑 실천의 의도(醫道)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는 진정한 의사라고 부른다. 새한일보가 이영만 원장을 만나 그의 삶과 인술 실천, 미래 비전을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 시 쓰고 노래하며 사회봉사하는 ‘낭만 치과의사’ 이영만 은평치과의원 원장이 자신의 삶과 인술 실천, 미래 비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봉사와 나눔의 실천은 이웃에 대한 작은 배려에서 시작합니다.”

서울 불광역 6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은평치과의원을 운영하는 이영만 원장은 “작은 것이지만 제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눌 때 받는 분이 조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저 역시 큰 기쁨”이라며 ‘나눔’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이 원장은 서울 은평구에서 20여년 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은평치과를 방문하면 이 원장의 삶이 얼마나 치열하고 사회 봉사적인지 한 눈에 볼 수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첫 번째는 무슨 손님이 그렇게 많은지, 늘 대기실이 붐비고 만원이다. 이영만 원장을 비롯해 치과의사도 여러 명이고 간호사도 많아 원활한 진료가 가능한데도 늘 병원은 진료를 잘 보고 친절하다는 칭찬이 자자해 환자들로 넘쳐난다.

두 번째는 지역 공동체와 우리 사회를 위한 나눔과 봉사의 활동상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다. 환자 대기실의 두 벽면에는 각종 졸업장과 수료증, 표창장과 상장, 위촉장과 임명장 등 대략 2000여장이 빼곡히 걸려 있어서 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많은 상장과 감사패·위촉장 등을 받을 수 있었을까 놀라게 된다.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원장이 참여해온 세미나, 학술대회 등에서 받아온 명찰들이다. 대략 500개 정도 걸려있어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원장실 한쪽으로 있는 진열장에는 그동안 그가 서울시, 은평구, 대한치과의사협회 등지에서 받은 수많은 상패가 진열돼 있어 이 원장이 이 시대의 일꾼으로 지역을 대표하고 살아왔음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이영만 원장은 경찰발전위원장이기도 했고 서울지방경찰청 경찰발전위원회 연합회장과 한국자유총연맹 은평구지회 회장, 은평문화원 부원장이기도 하다. 은평라이온스클럽 회장을 역임하고 지역부총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에 앞서 존경의 뜻을 담은 축하 인사를 건네자 이 원장은 “상을 주고 위촉할 분이 없었는지 제가 받게 됐다”며 겸손해했다. 하심(下心)이다. 그는 “날로 우리 사회의 인정이 메말라 가는 게 안타깝다”며 “나부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나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전북 완주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그렇다고 꿈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치과대학에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갖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고 치과의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았을까.

“할아버지께서 양조장을 하셨어요. 어렸을 때 각 지역에 하나씩 있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양조장 경영이 어렵게 돼서 돈을 버는 방법이 뭘까 고민해봤는데 의사가 좋겠다. 그 중에서도 치과의사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엔 무면허 의사도 적잖았고 치과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치과의사가 되면 가난하고 힘든 무의촌에 봉사도 하고 돈도 벌 수 있겠다고 생각도 했죠.  이후 치과의사가 되고 치과의사협회에서 주관하는 자격증은 다 땄습니다. 통합치과 전문 임상의, 임플란트 인증 자격증, 턱관절 인증 자격증, 심미보철 등이지요.”

▲ 어머니과 함께

이 원장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좋아했던 것 같았다며 재능보다 노력을 많이 한 결과 의학박사 학위도 취득했다고 소개했다. 학구적 자세는 본업인 치과 쪽에서도 발명가로서 내공이 깊다. 1993년 ‘날개형 임플란트’를 발명해 6만여 개를 사용해 품질인증을 받을 정도다. ‘응력분산형 임플란트 고정체’ 등 5개 특허를 취득하고 ‘임플란트 명인 100인’에 포함될 정도로 저명 치과의사다.

이 원장은 임플란트 시술 시 골 결손부가 존재하는 경우 시술이 어렵고 예후조차 나빠진다면서 치주조직재생유도술(GBR)을 시행한 곳의 수술부위가 벌어지거나 감염 이식재 소실 등 여러 합병증이 생길 수 있음을 지적, “임플란트 상단부 치경부에 날개구조를 고안하게 됐으며 이러한 날개구조로 멤브레인 없이도 효과적인 골 재생이 잘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형태의 임플란트는 식립과 동시에 GBR을 했을 경우 이식재가 힐링되는 기간에 소실되고 치조골 위로 임플란트가 노출될 수 있다. 그러나 날개형 임플란트는 골 결손부가 있는 발치와에 식립하면 3개월 안에 골 재생이 완벽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치주염이 있는 환자도 심각한 골 흡수를 보이는데 이러한 경우 이식재가 임플란트 날개 아래에 유지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GBR이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음이 증명됐다.

이영만 원장은 시(詩)쓰고 노래하며 색소폰 연주에 사회봉사하는 낭만 치과의사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 그리워 그리워', '엄마의 노래' 등 시집을 4권 냈다. 3권 시집 ‘열정, 그 길에서 세상의 빛이 되다’는 정세균 국무총리와 공저다. 색소폰 연주, 작사에 노래까지 하는 팔방미인의 재주를 지녔다. 작사도 가수 남진의 '모정', 강진의 '족두리봉', 서지오의 '오늘밤에',  송대관의 '덕분에' 등 30여 곡이나 했다. 노래하는 낭만치과의사답게 자신이 작사한 ‘바람 같은 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2곡은 자신의 목소리로 음반에 담았다. 이 원장의 작품세계엔 모정, 고향, 산천, 사랑 등 서정성 진한 시어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

“마흔에 홀로 되신 어머니 혼자서 저를 키우셨고, 그 모습을 보아온 저는 어머니를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지금 93세이신데 50년 넘게 모시고 있어요. 고양시 승화원(벽제화장터) 부근에 땅을 조금씩 모아 거기에 집을 준비했는데 작은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서 함께 계십니다. 제 작품들에 어머니 얘기가 많이 들어가는 건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어요. 남진 선생님의 ‘모정’도 어머니에 대한 노래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라고 어디서 말씀하고 다니시지도 않으시고 주변의 분들과 함께 잘 지내시는 분이셨어요. 지금은 아무래도 연세 때문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영만 박사는 영화에도 출연한다. ‘1958’은 720만 베이비부머 세대의 중심인 58년 개띠 초등학교 남녀 동창생들의 희로애락을 그린 영화로서 지난 2월5일 첫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 ‘1958’은 2018년 초연한 대학로 연극 ‘오팔주점’(극본 및 감독 장기봉)을 모티브로 각색한 작품으로 한국시니어스타협회 김선 대표와 시네마테크 충무로 김문옥 감독이 공동제작을 맡았다.

이영만 원장도 김선, 박노철과 함께 실버스타 주연 가운데 한 명으로 출연한다. 오는 9월 추석에 맞춰 개봉할 예정인 영화 ‘1958’에서 이영만 원장이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비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본업인 치과 이외에도 이토록 많은 일을 즐기면서 한다니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지 궁금하다. 그 힘은 ‘열정과 나눔, 봉사’라는 생각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기획이사인 이영만 원장은 치의학연구원 설립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는 치의학연구원이 코로나19로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이번 집행부에서는 국회통과를 꼭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반값월세 첫 착한건물주로도 널리 알려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온 국민이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 들어있는 세입자들의 월세를 50%이상 깎아줘 화제가 됐다. 1500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받지 않겠다고 양보한 것이다. "모두가 어렵잖아요." 짧게 던지는 말이 큰 울림으로 가슴에 닿는다.

아호가 대금(大金)인 낭만치과의사 이영만 박사. 인생을 참 멋있고 맛있게 산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는 아니잖아요. 아시다시피 저도 흙수저였거든요. 이제 부를 이루었다고 보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가족들을 위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사회에 환원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진정한 의료인의 표상을 느낄 수 있다. 진료비만 보는 단기 이익이 아닌, 인술로써 ‘더 큰 자산’을 쌓는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은평치과의원 이영만 원장 같은 이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고, 미래세대들이 귀감으로 삼을 수 있는 어른이 존재한다는 위안을 주고 있어 흐뭇하다. 인술천리 인향만리(仁術千里 人香萬里)의 실존이다.

황종택 주필·대기자 webmaster@shilbo.kr

<저작권자 © 새한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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