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드루왕자와 영국 빅토리아여왕의 증손녀 앨리스 공주 슬하 1남4녀중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외증조부가 러시아 니콜라이 1세이고, 고모할머니가 엘리자베스의 증조할머니로서 두사람은 7촌간이며 스페인의 왕비 소피아는 5촌 종질녀이다.

그리스 군주제가 전복되어 온가족이 강제추방당해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아버지는 모나코로 망명하였으며 누이는 만삭인 채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여 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등을 오가며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34년 13살 때 켄트공작 결혼식에서 공주를 처음보았고 영국왕실의 보호속에 영국기숙학교를 거쳐 왕립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다. 1939년, 18세때 해군사관학교 생도시절 국왕부부의 학교시찰시 공주자매를 안내하며 5살 연하인 공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군복무하는 동안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관계를 발전시켰다.

해사 졸업후 해군에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1945년, 24세에 도쿄에서 열린 항복조인식에 구축함을 이끌고 참여하였으며 이듬해 본국으로 귀환하여 해군대학 등지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그해 여름 공주와 결혼을 약속하고 공주의 아버지께 결혼승낙을 요청하여 국왕 조지 6세로 부터 청년의 출신성분과 왕족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높이 사 결혼을 승낙받아 1947년, 26세에 결혼하여 에든버러공,메리오네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에 올랐다.

신혼을 마치고 군대에 복귀하여 부함장으로 재직중 1951년,30세에 공주와 함께 국왕대리로 해외순방을 하고 1952년 31세에 공주의 여왕등극으로 군주의 남편이 되었으며 이듬해 영국 해군원수, 육군원수,공군원수, 해병대총사령관의 직함을 받고 1954년 호주의 육군원수에 올라 69년간 여왕의 배우자로서 약 5,000번의 연설과 약33,000번의 단독업무를 수행하고 2017년 은퇴하였다.

세계야생동물기금 회장 등 780여개 단체의 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143개국을 방문하고 에든버러 대학교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2011년, 89세에 심장 스텐트삽입수술에 이어 지난달 재 수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2021년 4월 9일 엘리자베스 여왕과 슬하에 3남1녀와 손자녀 8명과 증손자10명, “God is my help,Honi soit qui mal y pense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화 있을진저)”가 생겨진 방패와 “"나는 자식에게 성을 물려줄 수 없는 유일한 남자"라는 명언을 남기고 99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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